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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소시엄교회

공유를 넘어 연합으로 : 기존 공유 교회 모델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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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2.11 21:07

공간만 나누는 '한 지붕 세 가족'이 아닌, 자본과 사역을 결합한 '투트랙 컨소시엄'의 혁신성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제가 제안하는 '투트랙(Two-Track) 컨소시엄 모델'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되묻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공유 교회나 카페 교회랑 비슷한 거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건물을 함께 쓴다는 '형식'은 같지만, 그 안을 채우는 '운영 원리'와 '철학'은 기존 모델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훨씬 정교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1.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대안들

한국 교회는 이미 생존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짚어보겠습니다.

  • 공유 교회 (Shared Church) : 하나의 예배당을 여러 교회가 시간대를 나누어 씁니다. (9시 A교회, 11시 B교회...) 월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지만, 서로 '옆집 이웃' 이상의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 비즈니스 선교(BAM) 공간 : 크리스천 기업가가 자신의 사업장을 주일에 내어줍니다. 훌륭한 섬김이지만, 건물주(기업가)의 영향력이 비대해져 목회적 독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습니다.
  • 인큐베이팅(분립) 개척 : 대형 교회가 자금을 대고 부목사를 내보냅니다. 안정적이지만, 모교회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야성을 기르기 어렵습니다.

이 모델들은 훌륭하지만, 공통적인 아쉬움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의식의 부재''진정한 연합의 부족'입니다.

2. 무엇이 다른가? 투트랙 컨소시엄의 3가지 차별점

우리가 제안하는 모델은 단순한 '임대'가 아닙니다. '소유와 운영의 분리' 그리고 '책임 투자'라는 새로운 문법을 사용합니다.

① '세입자'가 아니라 '주주'가 됩니다 (책임 투자)

기존 공유 교회에서 목회자는 월세를 내는 세입자일 뿐입니다. 내 건물이 아니기에 고장 난 문고리 하나 고치는 것도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델에서는 입주 교회도 반드시 자금을 투자해야 합니다. 비록 소액일지라도 내 피 같은 돈이 들어간 곳이기에, 시설을 아끼고 관리하는 '주인의식(Ownership)'이 생겨납니다.

② '따로 또 같이' 드리는 예배 (콘텐츠 연합)

가장 큰 차이는 '주일 예배'에 있습니다. 기존 모델은 공간만 같이 쓰고 예배는 따로 드려 20명, 30명의 소수 예배에 머뭅니다.
컨소시엄 모델은 주일 대예배를 함께 드립니다. 이를 통해 수준 높은 찬양과 역동적인 예배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목양과 돌봄은 각자 하되, 예배라는 '콘텐츠'는 과감하게 합치는 전략입니다.

③ 갈등을 막는 '50% 중첩' 시스템

건물주와 교회는 영원한 애증 관계일까요? 우리는 '운영진의 50%를 겹치게 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목회자가 투자자 그룹에 들어가고, 투자자가 목회 운영에 참여(보조)합니다. 내가 '주인'이면서 동시에 '사용자'가 되는 구조를 통해, 일방적인 갑질이나 무리한 요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3. 성공을 위해 주의해야 할 점

물론 이 모델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시스템이 정교한 만큼 운영의 난이도도 높습니다.

첫째, '돈'보다 '가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투자자(기업가)가 수익률만 따지거나, 목회자가 비용 절감에만 혈안이 된다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운다"는 킹덤 빌더(Kingdom Builder)로서의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둘째,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입니다.
혼자 하면 빠르고 편합니다. 함께 하면 느리고 의견 조율이 힘듭니다. 예배를 합치고 공간을 나누는 과정에서 오는 불편함을 '성숙의 기회'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리더들만이 이 모델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야성을 잃지 않는 안전한 울타리

기존의 공유 교회가 '비를 피하는 처마'였다면, 투트랙 컨소시엄 모델은 '함께 농사짓는 든든한 밭'입니다.
목회자의 야성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자본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울타리를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교회 생태계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