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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모두가 대형교회 목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현실적인 수입과 시간의 자유를 선택한 '내려놓은 목회자'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나중에 대형교회 담임목사님이 되셔야죠."
신학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마치 그것이 목회의 유일한 성공인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 솔직해집시다. 모두가 대형교회 목사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형교회가 아닌 길'을 걷는 목회자에게 현실적인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거창한 비전 대신, 아주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목표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비(非) 대형교회 목회자의 현실적 목표:
월 실수령 300만 원의 수입 + 대학교수 같은 시간의 자유
1. 현실적인 수입 목표: "주방 이모님 정도면 족하다"
뜬구름 잡는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非) 대형교회 목회자의 적정 수입 목표는 실수령 300만 원(내외)입니다.
- 공식: 교회 사례비 + @ (나의 노동/기술로 번 부수입)
- 기준: 식당 주방에서 땀 흘려 일하시는 이모님들의 급여 수준.
30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4인 가족이 수도권에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돈도 아닙니다. 딱 '밥값 하는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입니다.
만약 자녀 교육비나 대출 등으로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면?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사모가 일을 하든, 목사가 투잡을 뛰든, 그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가 아니라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의무'입니다.
교회 재정이 부족하다고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보다, 내 손으로 땀 흘려 부족분을 채우는 것이 훨씬 당당합니다.
2. 시간의 자유: "백수와 대학교수 사이"
돈을 조금 내려놓는 대신, 우리는 '시간'이라는 엄청난 자산을 얻습니다. 대형교회 담임목사님들은 CEO처럼 바쁩니다. 결재하고, 회의하고, 행사 치르느라 정신이 없죠. 하지만 우리는 출퇴근이 없습니다.
- 아침에 늦잠을 잘 수도 있지만,
- 하루 종일 도서관에 박혀 책을 읽을 수도 있고,
- 평일 낮에 힘들어하는 청년을 만나 3시간 동안 수다를 떨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대학교수의 삶과 비슷합니다. 강의 시간이 아닐 때 노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하듯, 우리는 말씀과 사람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의 여유'가 바로 우리 목회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3. 경계할 것: 나태함이라는 늪
하지만 이 자유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나태함'입니다. 출근 체크하는 사람도 없고, 실적 압박을 주는 상사도 없습니다.
"기도하러 간다"고 하고 사우나에 가도 아무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자유로운 영혼의 목회자'가 아니라 그저 '무능력한 동네 백수'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동료'가 필요합니다.
결론: 혼자 가면 나태해지고, 함께 가면 꿈이 된다
제가 [컨소시엄 교회]를 꿈꾸고, [밥 먹는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사'가 되어주지는 않지만,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는 되어줄 수 있습니다.
"이번 달에 어떤 책 읽었어?"
"생활 기술 연구소 수업 준비는 잘 돼가?"
"요즘 밥벌이는 좀 어때?"
서로의 현실(수입)을 점검해주고, 서로의 이상(꿈)이 식지 않게 부채질해 주는 동료들. 월 300만 원을 벌며, 대학교수처럼 깊이 있게 사고하고,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목회하는 삶.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인생 아닌가요? 저는 이것을 '내려놓은 목회자'의 특권이라 부르고 싶습니다.